the Romantic Movement

season9

Sep 11

달 착각(moon illusion)

On Sunday

이후남 국제부문 기자 hoonam@joongang.co.kr | 제235호 | 20110911 입력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해 추석은 미국에서 맞았다. 그게 정확히 추석날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그 무렵 미국에서 처음 본 달은 무척이나 컸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저만치 고층빌딩과 나란히 떠 있는 둥근 달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였다. 이 놀라운 발견을 들뜬 마음으로 당시 한국에 있던 지인들에게 전했다. 단박에 비웃음을 샀다. 달이면 다 달이지, 국산(國産)과 미제(美製)가 다를 리가 있겠느냐는 대꾸였다. 졸지에 달마저 미국산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했다. 혹 위도가 달라서 달이 더 커보이는 건 아닐까. 이건 아니라는 게 곧 확인됐다. 그 무렵 미국에서 머물고 있던 곳은 LA였다. LA는 북위 34도로, 북위 37도인 서울과 큰 차이가 없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았다. 그때 본 달이 마침 지평선 가까이에 떠 있었기 때문에 빌딩과 견줄 수 있어서 더 크게 느껴졌으리라는 추정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고맙게도 나 같은 의문을 품은 이들이 또 있었다.

달이 하늘 높이 떴을 때보다 지평선에 가까울 때 더 커보이는 현상은 이미 기원전 4세기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달 착각’(moon illus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고 보니 달 착각은 빌딩이나 산처럼 근경에 비교할 대상이 없는 경우에도 벌어진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빛의 굴절 등 여러 가지 주장이 분분할 뿐 명쾌한 설명은 아직까지 없다.

  사실 미국에서 본 보름달은 너무 커서 좀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21세기의 현대인도 이럴진대 옛날 사람들에게는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순환이, 일식·월식 같은 천체 현상이 얼마나 놀랍고 신기했을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는 달이 두 개인 세상이 등장한다. 하나여야 할 달이 두 개라는 걸 깨달은 주인공들은 차마 그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다녀온 지 40여 년이 지나도록 달 착륙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마음도 알 것 같다. 공기가 없는 달에서 성조기가 펄럭이는 듯 보이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달이 여전히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에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태양의 주기를 따라 1년 365일을 살면서도 우리는 설날·정월대보름· 한가위 등의 명절을 달의 움직임에 따라 쇤다. 사계절이 뚜렷한 농경문화에서 한가위는 가을걷이 직후의 연중 가장 풍요로운 시기다. 이를 가리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하는 표현은 그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덜도 말고’는 몰라도 ‘더도 말고’라니, 옛 사람들은 풍요를 누리는 데도 절제와 중용을 발휘했던 모양이다.

  올 한가위는 태풍 소식까지 있어 보름달 보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도 좋다. 설령 비구름에 가려 있다고 해도, 추석 보름달은 매년 그랬듯 그 자리에 떠있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자체로 한가위를 고마워하고 싶다.